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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단상

삶, 그 유한함과 무상함(無常) 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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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는 게 참 무상(無常)하다

 며칠 전, 절도를 당했다. 잠시 놓아두었던 가방을 누가 홀랑 집어가서 적잖이 당황하고, 화도 많이 나고 슬프기도 했었다. CCTV 바로 앞에 둔 짐이라 범인은 일주일 뒤 경찰을 통해 잡혔지만, 잡힌 이후로도 생각처럼 해결이 수월하지 않았다. 이미 백이십만원 상당의 짐은 다 버리고 가방만 남은 상태에, 게다가 절도범은 40대 일용직 노동자에 고등학생 자녀 두 명의 아버지, 아내는 집을 나갔단다.

 배움이 짧은 탓인지, 피해자인 내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히려 역정내고 "왜 가방을 거기에 두었냐" 며 내 탓을 해대는데, 그 모습이 화가 나다가도, 못내 안타깝고 마음이 쓰리다. 본인이 절도 전과자가 되고 수백만원의 벌금을 물게 될 수도 있는 이 시점에, 본인이 어떤 위험에 처한건지 모르는 듯한 이 사람의 태도와, 또 그에 상반되게 안타까운 이 사람의 상황에 "이 사람을 어찌해야하나" 싶어 머리가 아프고 뒷골이 당겨온다.

 아아...이 사람의 상황을 몰랐더라면, 상황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더라면, 혹은 어리고 철없는 풋내기 대학생의 실수였다면 오히려 나도 더 으르렁대고 달려들었을텐데, 조금만 강하게 나가면 바로 숙이고 비굴하게 구는 가난한 중년의 사내라 더욱 얄미우면서도 마음 한켠이 쓰리다. 

 지금으로부터 딱 반 년 전, 무보험 상태에 운전미숙으로 정차해있던 앞차를 들이받아 한달간 악몽에 시달리며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가해자였기에 앞차 피해자께 진심으로 사과했고 가능한 최선을 다해 수리비와 치료비, 합의금 등의 보상을 하려 노력했기에 피해자 분과 합의도 비교적 원만했고, 경찰서에서도 큰 문제 없이 넘어갔음에도 당시 한달간을 시름시름 앓으며 시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미숙함으로 일으킨 사고가 너무나 죄송했고 거듭 사과하면서도,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합의금을 더 높게 부르시진 않을까 무서웠다. 게다가 합의 이후에 또 다시 문제제기를 하시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동시에 당장 양측 차 수리비로 수백만원이 나가면서 겹겹이 쌓인 스트레스로 거의 한달을 뜬 눈으로 보냈던 것 같다.

 지금 저 절도범의 마음도 그러할까. 전화는 겁이 나는지 통 받질 않고, 문자로만 일방적으로 소통하는데, "얼마 이상은 줄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 는 적반하장식의 저 말이 얄밉다가도, "그래. 오죽하면 저러겠나" 싶다. 이쯤되니 협상과 합의의 칼자루를 내가 쥐었다 한들, 누군가를 계속 미워하며, 당장 닥친 손해와 피해를 메꾸기 위해 고뇌하며 피해자로 사는 것도 그 피로도가 만만치 않다. 그저 적당한 선에서 더이상 피곤하지 않게 끝이 났으면 좋겠다. 지금 저 절도범 또한 가해자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어서 이 사태가 해결되었으면 싶을게다.

 계절을 지나다보면 어느 날은 비가 오고, 어느날은 눈이 온다. 또 어떤 날은 바람이 불고, 또 어떤 날은 햇빛이 비친다. 나는 한 때 누군가를 아프게 했을테고, 또 어떤 날엔 누구 때문에 아팠을 것이다. 날씨가 무상하듯 살아가는 모습도 참 무상하다. 

2. 유한한 삶에 대하여

 몇 주 전 외할머니를 뵙고 왔다. 아흔이 넘으시고, 장기의 기능이 다해 수혈로 계속 피를 갈아줘야 한다는 우리 할머니. 힘이 없으셔서 누워서 생활하시고, 먹여주지 않으면 식사도 못하시는데, 자식들 중 어느 하나 여유로운 자식이 없어 각출하여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연락도 잘 하지 않다가 이럴때만 한우세트 따위로 그간의 고마움과 손자의 사랑을 표현하는 내 모습이 좀 천박한 것 같았다. 그 날 이후로 요양원에서 지내시는 외할머니 생각에 문득문득 깊은 슬픔에 잠기곤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

 누구나 아는 명제이지만,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순간은 드문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이런 상태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면 삶에 미련이 많이 남을 것만 같다. 예측불가능한 삶의 과정에서 죽음만이라도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는 젊은 나이에 사고로 떠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백세가 다 되도록 삶을 누리다 가는 세상 속에서 내가 전자일지 후자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생의 마지막에 대하여 두려움과 덧없음, 그리고 깊은 회의감이 동시에 든다. 

 그러니 미련이 남지 않도록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주변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 누군들 죽음을 앞두고 "아, 회사를 위해 더 많이 일할걸. 돈 좀 더 많이 벌어놓을걸. " 하는 사람이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지금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는 일이나 업에 대한 미련보다는 시간을 많이 쓰지 못하고 있는 사람과 관계에 대한 미련이 더 많을 것만 같다. 오늘 죽더라도 "아쉽지만 그래도 잘 살았노라" 고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는 나의 생을 꾸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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