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단상

가장의 무게와 낭만에 대하여

반응형

  혹자는 외친다. 유사이래 요즘처럼 돈벌기 좋은 시대가 또 어디있냐고. 중국에서 물건을 떼다가 인도네시아에 파는 글로벌한 셀링이 가능한 요즘이라고. 또 누군가는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때가 언제있었냐고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한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지금 사지 않으면 이내 곧 다시 솟구치는 로켓처럼 날아간다고, 잡을 수 있을 때 잡으라고 외친다. 그럴수록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사촌 형이 투잡을 시작했다. 조카가 네 살이 되면서 퇴근 후 집 앞 '맘스터치' 에서 배달을 한단다. 결혼 전 형은 인중과 턱에 멋들어진 수염이 가득했고, 옷입는 센스 또한 위트가 넘치며 누구보다 자유로워보이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닭가슴살보다 퍽퍽해 보이는 삶의 맛을 우걱우걱 씹어내며 나아가고 있다. 결혼과 육아, 끝없는 노동으로 점철된 일상은 내게도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기에 왠지 같이 짠해진다. 

 

 혹자들이 말하길 자본소득이 중요하다, 노동소득으로는 미래의 생활물가를 따라잡을 수 없다, 지금 투자하라, 지금 매수하라, 지금! 지금! 지금! 이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삶의 파도에 떠밀려온 고민덩어리들을 말끔하게 치워내고 나면 내면 저 깊은 곳에 나의 낭만이 있다. 볕 드는 창가에 앉아 거니는 이들을 보고 움직이는 차를 보며 얼음을 동동 띄운 커피 한 잔과 함께 조용히 책을 보는 일.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한강변에 그늘막 텐트와 낚시의자를 놓고 여자친구와 친구들을 모아 피자에 맥주를 마시고 웃으며 하루를 보내는 일. 평일 오전 느긋하게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를 하며 친구와 바나나우유에 훈제 계란을 까먹는 일 등 이토록 사소함에도 바쁜 삶에 치여 누리지 못하는 낭만들이 있다. 

 

 언젠가는 기필코 내 낭만을 일상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탓에 이렇게 잠시 끄적이는 낙서 속의 나는 '낭만' 이니 '꿈' 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모니터 밖 현실의 난 더 좋은 투자가 있는지, 펀드는 뭐가 좋은지, 뜨는 지역은 어디인지 그저 세상빛에 물들어 지친 인간이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가난은 꿈조차 갉아먹고, 희망의 새싹을 먹이로 삼아 더욱 절망으로 몰아가는 것을 알기에 가난할 수 없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 라고 외치는 어느 책의 저자처럼 떡잎부터 배포가 큰 유형의 사람은 못되기에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바쁘게 움직여 지금의 소득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한단계 점프업할 기회를 엿보아 움직이는 수 밖에 없다. 

 

 어린 녀석이 '돈, 돈 거리는 것' 에 대해 직장의 어느 선배가 얹짢은 표정으로 안타깝다며 나무라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모든 건 사실 돈과 탐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꿈에 대한 이야기이고, 낭만에 닿는 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지지 못함은 청렴함 또는 미덕이 아니고, 부는 죄악이 아니며 부를 좇는 것은 궁상이 아니다. (그래도 직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앞으로 자제해야겠다고 다짐하게된 계기이다)

 

오늘의 글은 여기서 마친다. 

낭만을 위하여!

 

반응형